월요일에 세운 생산계획이 수요일이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긴급 오더가 들어오고, 설비가 멈추고, 자재가 늦게 도착합니다. 결국 반장이 자기 판단으로 순서를 바꾸고, 계획서는 서랍에 들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나오는 진단은 "계획을 더 자주 세우자" 또는 "계획 담당자를 늘리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문제는 대개 계획을 세우는 방식 자체에 있습니다.
1. ERP의 생산계획이 자주 틀어지는 이유
많은 회사가 ERP의 자재소요계획(MRP) 기능으로 생산계획을 뽑습니다. 그런데 MRP는 기본적으로 능력이 무한하다고 가정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이 제품을 만들려면 언제까지 자재가 필요하다"는 역산은 정확하게 해주지만, "그 시점에 그 설비가 비어 있는가"는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계획이 나옵니다.
- 같은 설비에서 같은 시간대에 두 개의 작업이 잡혀 있다
- 금형 교체 시간이 계획에 반영되지 않아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정이다
- 야간에 사람이 없는 공정에 작업이 배정되어 있다
계획이 틀린 게 아니라, 애초에 실행 가능성을 보지 않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현장이 계획을 믿지 않게 되는 출발점이 여기입니다.
2. 유한능력 계획과 APS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APS(Advanced Planning and Scheduling)입니다. 핵심 차이는 하나입니다.
| 구분 | MRP 방식 | APS 방식 |
|---|---|---|
| 능력 가정 | 무한능력 | 유한능력 |
| 보는 것 | 무엇이 언제 필요한가 |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가 |
| 결과물 | 소요량과 소요 시점 | 설비별·시간대별 작업 순서 |
| 제약 반영 | 거의 없음 | 설비, 인원, 금형, 교체시간 등 |

APS는 제약 조건을 넣고 실행 가능한 순서를 만듭니다. 그리고 조건이 바뀌었을 때 다시 계산해 순서를 재배치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만능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더 중요합니다.
3. APS를 넣어도 안 되는 경우
APS는 계산기입니다. 넣는 값이 틀리면 결과도 틀립니다. 그리고 제조 현장에서 이 전제가 생각보다 자주 무너집니다.
표준시간이 실제와 다르다
APS는 각 작업의 소요시간을 기준으로 순서를 짭니다. 그런데 그 표준시간이 몇 년 전에 정한 값이거나, 숙련자 기준으로만 잡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준시간이 실제보다 짧게 잡혀 있으면 APS는 계속 불가능한 계획을 내놓습니다. 현장은 또 못 지키고, 결국 "APS도 소용없다"가 됩니다.
교체시간이 반영되지 않는다
다품종 생산에서는 작업 순서에 따라 교체시간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제품을 붙여서 생산하면 교체가 짧고, 번갈아 생산하면 길어집니다.
이 정보가 없으면 APS는 교체 부담을 무시한 순서를 만듭니다. 계획상으로는 최적인데 실제로는 하루 종일 금형만 바꾸는 상황이 생깁니다.
실적이 제때 들어오지 않는다
APS의 강점은 재계산입니다. 그런데 재계산을 하려면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실적이 하루 뒤에 수기로 집계된다면, APS는 어제 상태를 기준으로 오늘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건 APS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수집의 문제입니다.
제약을 다 넣으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의 실패도 있습니다. 현장의 모든 예외를 제약 조건으로 넣으려다 규칙이 수십 개가 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APS가 왜 그런 순서를 냈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계획은 현장이 따르지 않습니다.

4. 도입 전에 확인할 것
APS 검토를 시작하기 전에 이 네 가지를 먼저 보시면 됩니다.
| 확인 항목 | 기준 |
|---|---|
| 표준시간 | 최근에 실측으로 갱신됐는가 |
| 교체시간 | 제품 조합별로 정리되어 있는가 |
| 실적 수집 | 당일 안에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는가 |
| 제약 조건 | 정말 중요한 것 다섯 개 이내로 추릴 수 있는가 |
네 개 중 두 개 이상이 '아니오'라면, APS보다 그 데이터를 먼저 정비하는 편이 효과가 큽니다. 순서를 바꾸면 비용만 쓰고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5. APS 없이 개선할 수 있는 것
솔루션을 도입하지 않고도 계획 정확도를 올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실제로 효과가 큰 순서대로 적으면 이렇습니다.
- 표준시간 재실측 — 상위 몇 개 품목만이라도. 계획의 기초가 되는 값입니다
- 교체시간 매트릭스 작성 — 어떤 제품에서 어떤 제품으로 갈 때 몇 분인지 표로 만듭니다. 이것만으로도 순서 조정 효과가 납니다
- 계획 주기 재검토 — 주간 계획이 틀어진다면 일간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왜 틀어지는지부터 봅니다
- 계획 준수율 측정 — 계획 대비 실제가 얼마나 맞았는지를 지표로 관리합니다. 이 숫자가 없으면 개선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 항목을 권합니다. 계획 준수율을 재기 시작하면 왜 틀어지는지가 저절로 드러납니다. 긴급 오더 때문인지, 설비 때문인지, 자재 때문인지가 몇 주만 기록해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 분포를 알면, APS가 필요한지 아니면 다른 것이 필요한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정리
생산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계획 담당자의 실력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실행 가능성을 보지 않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거나, 계획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가 낡았기 때문입니다.
APS는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입니다. 뒤의 문제는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뒤의 문제가 남아 있으면 APS를 넣어도 계획은 계속 틀어집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데이터를 먼저 정비하고, 그다음에 도구를 검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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