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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현장에서 AI가 되는 일과 안 되는 일

현장랩 2026. 9. 14. 09:18

제조업 AI에 관한 자료를 보면 못 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량을 잡고, 고장을 예측하고, 수요를 맞히고, 공정을 최적화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성과가 나는 영역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그리고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사이에는 꽤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선이 어디인지를 정리합니다.

선을 긋는 기준: 인식인가 예측인가

제조 현장에서 AI가 되는 일과 어려운 일을 가르는 기준
정답이 이미 존재하는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기준은 하나입니다. 정답이 이미 존재하는가.

구분 인식 예측
하는 일 지금 이것이 무엇인지 판별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 추정
정답의 위치 과거에 있다 (사람이 이미 판단해왔다) 미래에 있다
학습 데이터 모으면 만들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나야 생긴다
검증 바로 맞았는지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야 안다

이 차이가 실제 성패를 가릅니다. 인식은 사람이 이미 하고 있던 일을 옮기는 것이고, 예측은 아무도 확실히 모르는 것을 맞히려는 일입니다.

되는 일 1: 외관 검사와 불량 판별

가장 성과가 확실한 영역입니다. 이유가 명확합니다.

  • 사람이 이미 하고 있습니다. 검사원이 매일 합격·불합격을 판정합니다. 그 판정이 곧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 정답이 명확합니다. 이 제품이 불량인지 아닌지는 지금 판별 가능합니다
  •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AI가 틀렸는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압니다
  • 가치가 계산됩니다. 유출 불량 감소, 검사 인력 재배치처럼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촬영 조건이 일정해야 합니다. 조명이 바뀌거나 제품 놓이는 각도가 매번 다르면 성능이 흔들립니다. 이건 AI 문제가 아니라 설치 환경 문제이고, 대개 여기서 성패가 갈립니다.

되는 일 2: 문서와 도면에서 정보 추출

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효과가 큰 영역입니다.

도면에서 자재 정보를 읽어내거나, 사양서에서 조건을 뽑아내거나, 거래명세서에서 항목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눈으로 읽고 손으로 옮겨 적습니다.

이 일이 AI에 맞는 이유도 같습니다. 정답이 이미 문서 안에 있습니다. 추정이 아니라 읽어내는 일입니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추출 결과를 사람이 확인하는 단계를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누가 어떤 기준으로 볼지는 AI가 내놓은 결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검수하는가? 참고). 읽기는 대체로 잘하지만 100%는 아니고, 틀린 값이 그대로 발주나 가공으로 넘어가면 손해가 큽니다.

확인 단계를 넣으면 "완전 자동화"는 아니게 되지만, 읽고 옮겨 적던 시간이 확인하는 시간으로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큽니다.

어려운 일: 고장 예측과 수요 예측

가장 많이 회자되지만 중소 제조업체에서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데이터 조건이 안 맞기 때문입니다.

이유 1: 학습시킬 데이터가 없거나 부정확하다

예측 모델을 만들려면 과거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설비가 언제 어떤 상태에서 고장 났는지, 그 직전에 어떤 값이었는지.

그런데 대부분의 공장에서 이 기록은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3월 12일 A설비 고장, 수리 완료." 원인도 조건도 없습니다. 이 기록으로는 학습할 것이 없습니다.

설비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더라도, 고장 시점이 정확히 기록돼 있지 않으면 어느 구간이 이상 구간인지 표시할 수 없습니다.

이유 2: 이상 사례 자체가 너무 적다

이쪽이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고장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1년에 서너 번이면 데이터는 서너 건입니다. 불량률이 낮은 공장이라면 불량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관리가 잘 되는 공장일수록 학습시킬 이상 사례가 적습니다. 잘하고 있어서 AI를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시간으로만 해결됩니다. 데이터가 쌓이는 데 몇 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예측을 하겠다"는 접근은 대개 실패합니다.

AI 도입이 실패하는 두 가지 데이터 조건
관리가 잘 되는 공장일수록 학습시킬 이상 사례가 적다

그럼 예측은 포기해야 하는가

포기가 아니라 순서를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 저라면 고장 기록의 형식부터 바꾸겠습니다. 날짜만 적지 말고 설비, 부위, 증상, 조치, 정지 시간을 항목으로 나눠 적습니다. 이게 나중에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 정상 상태를 먼저 기록해 두세요. 이상을 찾으려면 정상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 규칙 기반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 무리가 적습니다. "이 값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알림"은 AI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문제는 이 정도로 잡힙니다

2~3년치 기록이 쌓이면 그때 예측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기록 형식을 바꾸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도입 전에 확인할 것

어떤 AI든 검토하실 때 이 네 가지를 먼저 보시면 판단이 빨라집니다.

질문 아니오라면
지금 사람이 그 판단을 하고 있는가 정답 데이터를 만들 수 없다. 난이도가 크게 오른다
정답인지 아닌지 바로 확인할 수 있는가 성능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학습에 쓸 사례가 충분히 있는가 먼저 데이터를 모으는 단계가 필요하다
틀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 정했는가 사람 확인 단계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네 개가 모두 "예"라면 검토할 만합니다. 두 개 이상이 "아니오"라면 AI보다 데이터 정비가 먼저입니다.

정리

제조 현장에서 AI가 잘하는 일은 사람이 이미 하고 있는 판단을 옮기는 것입니다. 외관 검사, 문서 읽기가 여기 해당합니다. 정답이 과거에 있고, 데이터를 만들 수 있고, 틀렸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맞히는 영역은 데이터가 쌓이기 전에는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기술로 앞당길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순서는 이렇습니다. 인식부터 시작하고, 그 사이에 기록을 정비하고, 데이터가 쌓이면 예측을 검토합니다.

문서 추출부터 시작한다면 한 가지 먼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그 문서를 외부 AI 서비스에 넣어도 되는지입니다. 성능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이고, 사내 문서를 AI에 넣기 전에 확인할 것에 따로 정리했습니다.